<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은 열정적인 독서가이면서 많은 책을 쓴 저술가였다. 허균은 책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즉시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메모해 둔 문장들을 분류하여 책으로 엮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한정록>이다. 마흔두 살에 지은 이 책은 4000권이 넘는 중국의 고전에서 각각의 주제에 맞는 시문을 가려 뽑아 엮은 것으로, 일종의 교양서이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 가면서 꼼꼼하게 읽었을 허균의 열정과 집념을 상상해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역시 세상이 다 아는 독서광이다. “책을 읽기만 한다면 비록 날마다 천 편을 읽었다 하더라도 읽지 않은 것과 같으니,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라도 그 의미를 깊이 연구하여 근본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약용은 스스로도 많은 책을 읽고 썼지만, 제자들이나 자식들에게 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올바른 독서 방법까지 알려주던 독서교육가였다. 정민 교수가 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보면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정약용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에서 의심이 가시는 순간과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를 메모했다. 이런 방식을 ‘疾書’(질서)라고 하는데,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빨리 적어 둔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것은 아주 능동적이고도 생산적인 읽기 방법이다. 정보들이 넘쳐 나면서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판단하기 힘든 요즘 시대에 독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손을 움직여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를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들이 추려지고,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메모하는 방법은 독자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 분석이나 독해를 목적으로 소설을 읽을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메모를 하면서 읽겠지만, 편하게 감상하려면 읽고 나서 전체적인 느낌을 메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약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려면 정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때는 한 페이지를 읽은 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데, 기억하기 쉽게 맵(map)이나 표, 그림으로 하면 된다. 정리를 잘하려면 글의 흐름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교, 대조, 대립, 토론하는 글일 경우 간단하게 핵심을 도표로 정리하면 되고,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핵심을 메모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읽기’가 돼 기억을 재생시키고 이해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많은 배경지식들이 생성되어 할 말이 많아진다. 저자가 곁에 있다면 차라도 마시면서 “이 대목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하며 대화를 건네겠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므로 대신 메모를 해 가며 읽는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끌어내어 얼른 적는 것, 또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것도 중요한 메모 기술이다. 메모하는 습관에 맛들이면 책을 읽는 목적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된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독자가 읽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메모해 둔 것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죽 훑어보면, 머릿속에서 지식이 통합되고 재구성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로소 자기만의 목차를 다시 구성할 힘이 생긴다.



[출처] 한겨례신문, 임성미 <책벌레 선생님의 아주 특별한 도서관> 저자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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