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행작가가 되는 법


2012년 2월14일 엄마와 아들이 인천 부둣가에 섰다. 얼마 전 환갑을 맞은 엄마는 30년 동안 매여 있던 가게 문을 닫은 참이었다. 함께 세계 여행에 나선 아들은 엄마가 과연 한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이를 합치면 달걀 세 판, 몸무게를 합치면 100㎏이 안 되는 이들 모자는 300일 동안 50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여행이 사람을 바꾼다. 수십년 동안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밖으로 나가본 적도 별로 없던 어머니 한동익씨는 한번 나가보더니 “세상에 최대한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기고 살고 싶다”는 열정을 품게 됐다. 여행기가 인생을 바꾼다. 여행 가기 전 영화와 방송에서 제작 스태프로 일하며 ‘겨우겨우 밥은 먹고 살았던’ 아들 태원준씨는 여행서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쓰면서 갑자기 작가가 됐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는 나온 지 한달 만에 7쇄를 찍고 여행지리/에세이 부문 판매율 1위에 올랐다. 평범한 블로거였던 태원준씨는 본격 여행작가가 되어야 하나 고심중이라고 했다. 태씨는 오는 10월 두번째 책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를 낼 예정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행책은 뜨거운 등단 무대다. 출판 시장에서 작가로의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여행서 전문 출판사 테라의 박성아 편집장은 “여행서는 다른 출판분야에 비해 작가 이름값이 덜한 분야다. 오히려 신선한 것, 새로운 것일수록 주목받으며, 심지어 신인·무명 작가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며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 책을 내고, 또 잘되는 일을 여러 차례 목격하기 때문에 여행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는 장연정 작가의 예를 든다. 작사가라고는 하지만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소울 트립> <슬로 트립> 같은 여행서를 잇달아 내면서 작가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장연정 작가는 최근 세번째 여행서 <눈물 대신, 여행>을 냈다. 출판사 달의 한 편집자는 “무명 작가들이 출판사로 보내는 투고의 90% 이상이 여행책이다. 지금 작가가 되고자 하는 분들은 우선 여행작가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했다.

출판 과정도 다른 분야보다 어렵지 않다. 박 편집장은 “출판업계에 있으면서 매번 느끼는 건, 여행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큼이나 여행서 출간에 대한 로망이 있는 출판사 사장님들이 참 많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예스24에서 꼽아보니 올해 8월까지 출간된 여행서는 470종, 그중 여행 에세이 분야는 110종이다.

특히 제2의 한비야, 제2의 김남희를 꿈꾸는 이들은 꾸준히 여행 에세이에 도전한다. 예스24 여행분야 강현정 엠디는 “여행 가이드북은 기성 여행작가들이 주로 출간하고 무명 작가들은 여행 에세이를 낸다. 그러다 보면 간혹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책들도 나온다”고 했다.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여행작가 가이드북>에 나오는 루이자 피트 오닐은 이렇게 묘사한다. “아마 당신은 몹시 여행하고 싶겠지만 시작하려면 여행기 같은 구실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려는 열정과 앎에 대한 갈증이 당신을 사방으로, 일곱개의 바다로 밀어낸다. 열정에 떠밀려 당신은 경험을 얻고 나날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날 가장 열정적인 산문은 여행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열정의 이유는 이렇다. 김얀 작가가 쓴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에는 외국의 낯선 도시를 헤매는 서른살 여자가 나온다. 방콕, 오사카, 프라하… 13개 도시가 무대지만 여행지의 풍광보다는 그곳에서 만나는 낯선 남자들에게만 집중하는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다. 집안의 권유대로 전문대 치기공과를 나와 일하던 작가는 어느날 문득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했단다. 결론은 여행, 섹스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었다. 김 작가는 “한국에선 나는 누구의 딸, 어떤 직업, 미혼 여자인데, 여행할 땐 온전한 나였다. 여행하고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행위, 나를 돌아봄이었다”고 했다. 혼자가 안되면 같이 한다. 네이버 카페 ‘여행자들’ 회원은 모여서 <여행을 떠나는 서른한가지 핑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여행지의 자유로운 공기, 여행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작가 과정을 밟는 사람들을 보면 전직을 꿈꾸는 30~40대 회사원이 대부분이지만 요즘 50~70대 남자들도 많이 찾는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여행작가 입문 강좌’에서 수강하는 사람들도 고등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이 강좌를 진행하는 조은영 트래블레시피 대표는 “기자나 방송작가 등 원래 글을 쓰던 사람들도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행뒤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동국대 평생교육원 여행작가 과정을 마친 삼십대 직장인 김춘애씨는 올가을 <반나절 여행>이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여럿이 같이 쓴 가이드북이지만 오랫동안 꿈꿔온 첫 책이다. 2003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으로 중남미까지 긴 여행을 떠날 때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전업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지금은 한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 심사업무를 맡아 일하면서도 “언젠가는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가지고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같은 여행작가 과정에서 공부한 우지경씨는 원래 한화호텔앤리조트에서 일하던 홍보담당자였다. “여행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전업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여행은 몰라도 여행작가의 생활엔 어떤 낭만도 없다. 곧 출간될 대만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한편으로 항공·철도 회원잡지에 글을 쓰지만 그걸로도 모자란다. 프리랜서로 브랜드 네이밍 일도 해야 생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우씨는 어쨌든 “월급보단 여행”이란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이 전하는 현실적인 당부는 이렇다. 박성아 편집장은 “여행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90%는 여행 에세이 집필을 원하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다. 유명 시인, 문인, 학자를 제외한 여행 전문 작가나 일반인이 쓴 여행서 시장 전체 매출의 80~90%는 정보서, 가이드북에서 나온다”며 “전업 여행작가가 되려면 정보서 저자를 겸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가 전하는 현실은 훨씬 더 팍팍하다. “2000년 중반까진 여행 블로거의 책이 먹혔지만 이젠 무명인이 쓴 여행 에세이는 찬찬히 읽힐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감상적인 여행 에세이 대신 엄마와 함께, 아이와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 에세이나, 세계 일주 대신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책들이 인기를 끈다. 윤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여행 에세이는 힐링책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삶을 이동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책을 원한다. 우선 절대적인 필력이 필요하고 다음으론 여행과 삶의 경험이 일치해야 한다. 콘셉트가 분명한 여행, 여행 이후의 삶에 변화를 볼 수 있고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책만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여행과 삶의 일관성이 있는 책들, 유랑형이 아닌 정주형 여행 책들이 최근 주목받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출처] 한겨레 2013.9.13 기사 발췌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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