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내정자 6개월 먼저 통지… 로펌서 ‘후관예우’ 받아

지난해 12월 로스쿨 출신 변호사 37명은 은밀하게 판사 합격통지를 받았다. 대법원은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서초동의 한다 하는 저녁자리에서는 다 퍼졌다. 합격자들은 대부분 대형 로펌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합격통지를 받기가 무섭게 곧바로 로펌 대표에게 보고했다. 말이 좋아 보고이지 그 지엄함은 사실상 통보였다. 더 이상 선배 변호사들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말단 변호사가 아니라, 법대 위에서 당신과 당신 의뢰인의 재산과 운명을 갈라줄 신분임을 고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 통보가 로펌으로서는 무섭지가 않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임관일이 7월 1일이라고 했으므로, 6개월간 월급도 많이 드리고 저녁자리에도 모실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과 시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로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변호사의 설명. “밥 사고 술 사고 일은 안 시킨다.”

판사를 마치고 로펌에 간다고 해도 비난이 들끓는 세상인데, 판사로 통보를 받고 6개월씩이나 더 로펌에 있는 이유가 뭘까. 쉽게 말해 미리 뽑힌 것이다. 올해부터 판사가 되려면 법조 경력 3년이 필요한데, 통보 받았을 때는 경력이 2년6개월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머지 6개월을 채우려 세상이 다 아는 판사 합격자가 로펌에서 밥을 먹는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이렇게 해명한다. “대학교 신입생도 고등학생 시절에 뽑히고, 전에 사법연수원 출신 판사도 연수생 신분으로 뽑혔다.” 하지만 경우가 다른 설명이다. 고등학생이 대학에 붙었다고 교사에게 밥과 술을 얻어먹을 수 없고, 연수생이 판사가 됐다고 연수원 교수에게 술을 사내라고 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법관에 내정된 후배 변호사는 더 이상 후배가 아니다. 전직 판사를 수억원씩 들여서 데려오는 판에, 현직 판사가 되실 분이 내 옆방에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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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장애를 이유로 사법연수생 4명이 법관 임용에서 탈락했다. 박찬 조병훈 김신 박은수 씨다(사진 왼쪽부터).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로 이듬해 2월 전원 판사가 됐다. 이 가운데 김신 판사는 2012년 대법관에 올랐다. 당시 이들의 탈락이 부당하다고 확증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일한 임관 기준이 연수원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성적으로 판사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고, 법조일원화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발과정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로펌, 밥 사고 술 사고 일은 안 시켜

판사 내정자들이 어떻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법원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일부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알고 있으며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대법원은 이 부분에 매우 아파하고 있다. 법조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법원은 그다지 로펌에 우호적이지 않다. 자신들이 불면의 밤을 거듭해 내린 판결을 대가로 수억원씩 챙기는 변호사들이 고울 리가 없다. 그런데 로펌이 법원의 명예에 흠집까지 내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대법원 관계자에게 다시 물어봤다. “지난해 겨울에 연수원 출신과 합쳐서 전형을 했고 같이 발표했다. 연수원과 로스쿨 합격자 비율을 나눠놓고 시작할 수는 없었다. 같이 전형해서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야 맞다. 다만 연수원 출신은 4월 1일에 임관했지만 로스쿨 출신은 7월에 되어야만 했다.”

관계자의 말대로 그런 사정이 있어서 미리 뽑았다고 해도, 통보를 지난해 12월이 아닌 나중에 하면 될 일이었다. 진짜 속내는 다른 데 있다. 법원 사정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판사로 내정된 상태이니 진행된 사건에서 손을 떼고 술도 함부로 얻어먹지 말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 관계자들과 얘기해보면, 판사 내정자들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6개월을 신성하게 보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혈연과 인맥으로 엮여 있는 노회한 50대 파트너 변호사들의 관리를 벗어났다고 믿기도 쉽지는 않다. 서울변호사회 김한규 회장의 설명이다. “대법원이 3년을 채운 법조인을 대상으로 전형해서 합격 즉시 임관시켰으면 된다. 법원이 사건 담당자 바뀌는 로펌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순혈주의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6개월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그 판사는 그 로펌 사건 한 번은 반드시 봐준다. 판사도 사람인데 그렇지 않겠나?”

판사 내정을 6개월 먼저 통지한 것은 문제였다고 법원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어떤 사람을 판사로 뽑고 있는지다. 우선 경력면에서 보자면, 김한규 회장이 주장한 대로 ‘순결한 변호사’들을 대법원이 원하는 것일까. 일단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주간경향> 취재 결과 이번에 임관하는 로스쿨 변호사 37명 가운데 두 사람의 개업지가 아파트였다. 물론 판사로 내정을 받은 다음에 옮긴 것이다. 이런 일은 일본에서 정말 취직이 안 되는 변호사들이 하는 것이다. 일명 게타이 벤고시(휴대전화 변호사)라 불리는 사무실 임대료조차 못 내는 3류 변호사들이 카페를 전전하는 경우다. 그런데 7월 1일부터 판사인 이모 변호사는 대형 로펌인 화우에 있다가 용산구의 한 아파트로 개업지를 옮겼고, 윤모 변호사는 관악구의 한 아파트로 개업지를 옮기면서도, 전화번호는 이전 직장인 한 공기업으로 해놨다. 결국 이들은 사실상 3년을 채우지 못한 것인데도 대법원이 용인했고, 이유는 변호사로 돌아다니느니 집에나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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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보랏빛 법복을 입은 사법연수원 출신 신임법관들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전 세계의 법복은 보라색이나 자주색 계열이 많은데 신성함을 상징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팥죽색으로 민간에서 귀신을 쫓는 색깔이고, 마찬가지로 신성함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불과 2년 전인 이때 임관한 판사들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법관에 임용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법관 내정되면 더 이상 후배 아니다

이렇게 대법원이 순혈주의를 원한다고 해도, 과거 사법연수원 출신과 비슷한 판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뽑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인류 판사’가 등장하고 있고, 점차 늘면서 법원을 장악할 것이다. <주간경향>이 확인한 결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4월 사법연수원 출신 신규 판사들을 모아놓고 이런 훈계를 했다. 대상은 52명인데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판사가 된 사람들이다. 2017년에 없어진다는 사법연수원 출신이다. 당시 박 처장은 “로스쿨 출신들은 판사 합격통보를 받으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는데, 연수원 출신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이 원래 될 사람이 됐다는 식이다”라며 혼내듯 말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판사들을 비롯해 법조인들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전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뭐냐. 대법원장이 뽑아줘서 고맙다는 뜻 아니겠느냐. 과거에는 자기 성적으로 임관하는 것이니 누구한테 빚진 것도 없고 당당했다. 판사로 뽑아줬다고 눈물 흘리는 애들이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당당할 수 있겠느냐. 대법원이 상명하복을 원한다면 검찰과 다를 게 뭐냐.” 서초동 한 변호사의 냉소적인 반응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박 처장이 검찰의 예를 들면서 겸손하라고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박 처장의 훈계는 내용도 그렇지만 시점상으로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2017년부터 사법시험이 없어지므로 성적 위주 임용은 어차피 사라진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뻣뻣하게 버티는 신규 판사들은 사라진다. 올해 로스쿨 출신 판사를 뽑은 방식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법관 선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기준으로 판사가 뽑힐까. 모른다. 대법원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과 기준을 가지고 판사를 뽑았는지 법관으로 뽑힌 당사자들도 모른다.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인 나승철 변호사의 얘기다. “대법원에서는 공정하게 뽑았으니 믿어달라고 한다. 지금 요구하는 것은 기준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뽑았는지 안 밝히면 의심받는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국의 판사를 뽑는 일이다. 왜 기준을 안 밝히나. 이미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의심이 자리 잡고 있다. 배경 없는 사람은 판사가 못 된다는 말이 파다하다. 공개해서 의심을 풀어라. 이렇게 5년 10년 지나, 모두가 법원을 불신한 다음에 공개해봐야 소용없다. 메르스 사태를 봐라. 시민이 의혹을 가질 때는 공개를 해서 풀어야 한다. 믿어달라고 말할 게 아니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로스쿨 출신 신규 법관의 가족 정보가 돌고 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 서울변호사회 등의 입장이다.

임관 후엔 또 월급받으며 8개월 연수

이런 변호사단체의 추궁에 법원의 판사들도 답답해하며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 임관한 로스쿨 출신 판사들은 4년차 판사와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8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다. 기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판사들은 길어야 2주를 받는 게 전부였다. 복수의 법원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로스쿨 3년에 법조인 3년 하고도 다시 교육을 시킨다는 거다. 로스쿨이 연수원을 대체하지 못하고 법조인 3년 경력도 못 믿겠다는 거다. 사실 판사들 사이에는 로스쿨 출신들을 로클럭으로 일을 시키면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8개월 교육제도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런 식이면 서울대 교수도 일단 뽑아놓고 가르쳐서 학자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판사는 판결 안 쓰면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판결 안 하는 구성원을 이렇게 많이 뽑아서 그 많은 월급을 주는 것이고, 그 숫자는 더 많아진다. 시민들이 동의해주겠느냐.”

대법원 역시 이런 지적에 대해 알고 있다. “과거에는 성적대로 뽑는다고 시민들이 비난하지 않았느냐. 판사가 성적순이냐고 손가락질하고. 그래서 법조인 가운데 판사를 뽑는 법조 일원화가 시작됐다. 마침 로스쿨이 시작됐고 졸업생 가운데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변호사시험은 성적도 발표하지 않고. 로스쿨은 로스쿨대로 문제가 있다.” 외국은 어떨까. 로스쿨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은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1년간 전국 법원에서 연수를 받는다. 한국과 달리 사법시험 성적과 연수소 성적이 모두 공개된다. 시험성적과 함께 연수과정에서의 인성평가로 판사를 뽑는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오랜 변호사 생활을 거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뽑는데, 전국의 판사들이 수십년에 걸쳐 평가한 자료가 중요한 기준이다.

올해는 변호사 경력 3~4년인 법조인만 판사로 뽑았다. 그럭저럭 옛날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안 그렇다. 우선 2017년까지는 3년 이상 경력,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5년 이상, 2020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이상, 2022년 이후에는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나승철 변호사는 “지금부터 법원이 변호사를 평가해서 자료를 축적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실력이 있다는 단순한 결론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법원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너희들이 공부 잘하는 것 말고 신뢰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머리는 좋고 그나마 때는 덜 탔으니 믿어본다’는 것도 없어지게 생겼다. 이제는 그것마저 잃게 생겼다. 집안도 좋고 인맥도 좋아서 판사됐다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 대법관 한 명 잘못 뽑아서 법원이 입는 타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현장의 판사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귀족 판사의 시대가 오고 있다.

<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출처]: 경향신문 2015.06.20 16:44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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