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다가드는 공기가 하루가 다르게 혼혼하다. 유난스레 춥고 길었던 겨울이 마침내 갔다. 꽃샘잎샘이라니 아직도 몇 번은 변덕스러운 봄추위의 시샘을 겪어야 하겠지만, 절기의 흐름은 사람의 일과 달리 속일 수도 이길 수도 없다.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던 사람에겐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 옹송그렸던 어깨를 펴니 가슴이 뛴다. 다시, 봄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마음 씀이 유다른 선배의 후의로 특별한 밤마을을 다녀왔다.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는 가수 안치환이 10집 음반 발매를 앞두고 연 '새봄 콘서트'에 초대받아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 것이다. 병원에 가면 세상이 온통 아픈 사람들로 넘치는 듯하고 서점에 가면 (다행히도) 여전히 세상에는 책에서 삶의 해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한 것처럼, 공연장은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눈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빛난다.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을 잠시 뒤로 밀쳐두고 오늘 바로 이 순간을 즐기겠노라는 결단의 표식이다.

   가수와 연주자들이 입장하고, 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숨죽였던 악기들이 생명을 얻어 일제히 목청을 돋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 동안 변화하는 시대와 변할 수 없는 가치를 노래해온 안치환과 밴드 자유의 뜨거운 록(rock)은 모스크바 젊은이들의 광장 아르바트 거리 한구석에서 공연을 벌였던 빅토르 최와 그룹 키노를 연상케 한다. 소리는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라 모공 하나하나를 파고들어 단단히 질렀던 마음의 빗장을 푼다. 흔연하다.

   그러나 새봄 콘서트가 성황리에 진행된 것과는 별개로 공연계의 전반적인 침체는 이제 더 이상 놀라울 것조차 없는 이슈다. 경기 변화에 따라 가장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소비자들의 문화ㆍ여가비 지출이 선뜻 발길을 공연장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거니와, 한때 앞다투어 문화에 '투자'했던 기업체들은 슬그머니 '이익'이 나지 않는 투자처에서 발을 뺄 기세를 보인다. TV를 온통 장악한 일부 대형 연예기획사가 양산한 '아이돌'을 제외한다면 '노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제대로 놀아볼 판조차 벌이기 어렵다. 더더군다나 우울하고 심각한 일은 어느덧 종래의 모든 이상과 이념을 훌쩍 넘어서 우리 사회를 장악한 '먹고사니즘'의 영향으로 불황의 시기에 '노는 것'을 혐오하고 질시하는 풍조가 만연해가는 것이다. 1941년 일제의 전시표어였던 '월월화수목금토'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리바이벌되는 지경이 아닌가?

   하지만 제대로 놀고 쉬고 즐기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중요하다. 중세의 사육제가 제도와 금기에 갇힌 육체와 영혼의 긴장을 풀고 다시금 기운을 내어 살아갈 활력을 주는 축제였던 것처럼, 삶이 팍팍하고 세상이 각박할수록 신명을 내고 고립된 개인을 공동체로 묶는 놀이판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러하기에 문화는 자본과 투자의 경제 논리만으로는 절대 이해하고 운용할 수 없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이익'으로 그 가치를 저울질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생산성의 향상과 진정한 사회적 이익이 창출된다.

   어쩌면 몸이나 생활보다 훨씬 쉽게 가난해지는 게 마음이다. 그러하기에 시시때때로 기운을 북돋우고 온기를 더해야 한다. 마음의 봄은 마냥 기다려서는 오지 않는다.

   "처음처럼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공연이 끝난 후, 한바탕 신나게 놀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열기와 생기로 한밤에도 화안했다. 처음처럼 아침처럼, 마치 성큼성큼 다가오는 새봄처럼.


[출처]: 김별아 소설가, 매일경제 2010.3.12.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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