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5월의 교정은 싱그럽더군요. 일찍 도착한 덕분에 캠퍼스를 어슬렁거리고 잔디밭에 앉아서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 학생도 있었고 테니스를 치는 학생도 있었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학생도 있더군요. 햇살 때문이었는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문득 그 모습이 눈부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게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도 했고요. 제가 해야 할 특강의 내용은 잠시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제 강의 주제는 ‘힘겨워하는 20대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는데 다른 특강이 있는지 현수막이 더 걸려 있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경제와 자산 분배 전략’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더군요. 힘겨운 20대, 자산 분배…. 제가 방금 얼핏 느꼈던 캠퍼스의 낭만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었기 때문이죠.

   강의실로 들어가 학생들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큰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눈을 보니 막막해지더군요. 이 많은 친구들은 어떤 일로 지금이 힘겹다고 느낄까. 바로 질문을 들이댈 수 없어서 먼저 질문을 받기로 했습니다. 한 학생이 묻더군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냐고. 그리 오래된 세월도 아닌데 아득하기도 하면서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 여행, 사랑…. 저는 대답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않겠다고. 결코 순탄하거나 즐겁지만은 않았던 제 20대를 떠올리는 순간, 문득 의문스럽기도 했거든요. 과연 20대로 돌아간다면 내가 더 행복할까.

불확실성은 축복이자 특권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나서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힘드냐고요. 아무것도 모르겠고 모든 것이 힘들다고들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취직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취직을 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마침 시험을 잘 봤다며 밝게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느껴지는 착잡함, 등록금 고지서의 어마어마한 액수,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등을 휘게 한다는 죄책감…. 무엇보다 힘든 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떠밀려 가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줄 세워지고 떠밀려서 대학에 와야 했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제 또 어디로 밀려가는지…. 저는 물어봤지요. 제일 바라는 것이 취업이냐고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취업을 하면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봤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은 당장의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성이라지요. 그래서 보험에 들고 끊임없이 확률과 통계를 내고 심지어는 미신까지 만들어내며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인간은 어차피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음을. 더더군다나 이제 막 성인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20대라면 불안함과 막막함은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음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꿈을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너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서른이 다 되도록 직업을 구하지 못해 고생한다고 확실히 예언한다고 아이의 인생이 더 안정적일 수는 없을 겁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정확히 2년 2개월 후 서로 마음이 식어 헤어진다고 예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은 어떻게든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다면 힘든 현재를 더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감히 말하자면 20대는 고민을 할 자격은 있지만 좌절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 또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패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학창시절을 느슨하게 보낸 탓에 다른 친구보다 뒤처진다고 느끼더라도, 처음부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해 아르바이트에 허리가 휘어도 실패가 아닙니다.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일어나 초원을 달리려는 새끼영양의 몸부림과 넘어짐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운전면허시험에서 한 번 떨어졌다고 영영 운전에 실패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실패가 아니라 실수이므로 그때마다 새롭게 배운 것을 꽉 움켜쥐고 일어난다면 머지않아 해낼 수 있습니다.

실수할지라도 실패 아니다

   성공한 60대에게 물어봤다지요. 돈이 그렇게나 많으니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데 갖고 싶지만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이냐고. 대부분이 대답했답니다. 청춘이라고. 90세를 넘긴 사람에게 물어봤다지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 더 많은 모험을 해보지 못했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답하고 싶습니다. 기꺼이 돌아가겠다고, 다시 똑같이 실수하겠다고, 그러면서 또 배우겠다고. 힘겨워하는 20대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은 고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빌려 마무리하려 합니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출처]: 동아일보 2009년 5월 16일(토)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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