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빨간 이 배가 얼마 전 남극으로의 처녀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와 함께 남극 여행을 떠났던 83명의 단원들 모두 ‘제대로 얼음을 깰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아라온호의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답니다.”

인천항에 정박해있는 ‘아라온호’의 회의실에서 만난 남상헌 극지연구소 운영실장은 아라온호의 성능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반 선박보다 3~4배 강한 힘으로 얼음을 깬다”
“아라온호는 찬 바닷물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 고장력의 두꺼운 특수철판으로 돼 있습니다. 일반 선박보다 3~4배 강력한 힘을 가진 추진기로 선체를 밀어 얼음 7m 두께의 얼음을 깨뜨립니다. 밀어서 깨지지 않으면 선수를 들어 얼음 위에 올라탄 후 선수를 내리면서 그 무게로 얼음을 깨기도 한답니다.”
 

인천항에 정박하고 있는 늘름한 아라온 호의 모습. 빨간 바탕에 써있는
인천항에 정박하고 있는 늘름한 아라온호의 모습. 빨간 바탕에 쓰여 있는 ‘아라온’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 실장은 이어 “부서진 얼음조각들이 배에 부딪혀 진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물이나 공기를 분사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며 “만약 쇄빙 중 얼음에 갇힐 경우 전진과 후진을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등 인위적으로 선체를 흔들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 빠져나오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 실장은 또 “아라온호에는 위치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자동위치 제어장치 DP2가 있는데, 이를 적용한 세계 최초”라며 “어떠한 바람이나 해류에서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쇄빙선 건조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인 러시아에서도 아라온호의 DP2 시스템을 칭찬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남극 얼음을 밀며 나아간 순간, '이제는 됐다!' 외쳐”
이 같은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아라온호는 지난해 겨울 남극에 다녀왔다. 그런데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18일 남극으로 향한 아라온호는 1월 23일 저녁 대한민국 제2의 남극기지인 케이프 벅스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연구진은 아라온호의 쇄빙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얼음 세 곳을 찾아낸 뒤 1월 25일부터 사흘간 실험했다.

그런데 세 번 모두 실패했다. 첫 번째는 얼음이 너무 얇아 쇄빙능력을 확인하기 힘들었고, 두 번째는 얼음이 너무 두꺼웠다. 27일 밤에 했던 세 번째 실험에서도 얼음을 깨다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있는 사이 이미 언론에는 ‘아라온 쇄빙 시험 실패’ 등의 보도가 나가고 있었습니다. ‘안되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힘들었지요. 그러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라온 호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극지연구소 남상헌 운영실장의 모습.
아라온호를 자세히 설명하는 극지연구소 남상헌 운영실장의 모습.


연구진은 국내에서 했던 쇄빙실험 결과와 현지 실험 결과를 면밀히 대조분석했다. 그리고 세 번째 얼음 역시 아라온호의 쇄빙능력보다 두껍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원래 쇄빙선은 쇄빙능력에 맞는 얼음이 있는 노선을 따라 얼음을 깨며 이동한다. 그래서 헬기 등의 장비를 동원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노선을 찾아내곤 한다.

연구진은 다시 분석에 착수해, 1월 29일 네 번째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아라온호는 7m 두께의 얼음을 깨며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라진 얼음 사이로 부드럽게 움직이자, 배위에 있는 모든 이들은 기쁨에 찬 환호와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첨단 연구장비를 가장 많이 탑재한 쇄빙연구선
극지에는 석유는 물론 철, 구리와 같은 각종 광물자원이 많이 있다. 또 크릴을 비롯한 해양생물자원이 전 세계 수산물 생산량보다 많다고 한다. 게다가 남극 생물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내는, 결빙방지물질 등 독특한 생태물질은 산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가능성은 많지만 모두 미개발 상태다.

정부는 극지연구를 활성화하고 북극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2009년 11월2일 아라온호를 완공했다. 아라온호 건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극에 기지를 설치한 20개국 가운데 쇄빙선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폴란드뿐이었다. 다른 국가에선 1980년대부터 경쟁적으로 쇄빙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아라온호는 얼어있는 바다를 뚫고 남극기지에 물건을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밖에 일반 배가 항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얼어있는 바다에서 항로를 개척해주거나 얼음에 갇힌 선박을 구조하는 것도 아라온호의 일이라고 한다.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남 실장. 그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는 정책기자단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남 실장.


특히 연구도 수행할 수 있다. 아라온호 내부에는 ▲화학분석 연구장비 ▲ 해양/생물 연구장비 ▲지질/지구물리 연구장비 ▲기상/대기 연구장비 등이 있어 극지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사실 아라온호는 20여 개국이 보유한 쇄빙선중 첨단 연구장비를 가장 많이 탑재한 쇄빙연구선이라고 한다.

극지연구소 기획부 이지영 홍보팀장은 “일본이나 EU에서도 쇄빙선을 건조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일보 해상자위대 소속으로 연구선이라기 보다는 수송선 쪽에 가깝고, EU의 경우엔 쇄빙드릴선박으로 다목적 연구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 실장은 이어 “지금까지의 연구는 남극세종과학기지 주변을 중심으로 한 지엽적인 연구였다”면서 “가고자 하는 곳이 있어도 얼음이 가로막고 있으면 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주도의 국제공동연구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라온호 꼭 필요할까
쇄빙연구선의 연간 운영비용만 136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자금을 들이면서 쇄빙연구선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남 실장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쇄빙연구선을 보유한 나라로부터 대여를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배를 빌리기 힘들 뿐 아니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더 좋은 쇄빙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후발 국가들도 최첨단 쇄빙선을 건조하려고 하는 겁니다.”

남 실장은 "모든 해역 어디서든 인터넷과 TV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안테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 실장이 모든 해역 어디서든 인터넷과 TV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안테나를 설명하고 있다.


현재 아라온호는 인천항에 정박해있다. 연구진들은 처녀출항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리고 7월 1일에는 북극 항해를 시작한다. 8월 30일까지 약 두 달 동안의 북극 항해를 마치고 인천항에 돌아온 아라온 호는 10월 1일쯤 또다시 남극으로 떠날 계획이다. 구체적인 사항이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여름 3개월 동안은 북극에, 겨울 6개월 동안에는 남극에 간다고 한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과 매서운 바람을 가르고 모든 해역 곳곳을 누빌 대한민국의 아라온호.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가 더 닳고 색이 바랄 때까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활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윤지 정책기자 (대학생) janeglay@naver.com


 

Posted by 경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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